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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컬럼

사무엘서는 역사서로 법궤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에게는 없어서 안될 성물입니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이 들어있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단강을 건널 때도, 가나안을 정복할 때도 법궤, 즉 말씀을 앞세워 승리하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발생합니다. 이런 놀라운 능력의 법궤를 잘 못된 믿음으로 오용하는 사례가 발생을 합니다.


첫번째 사건은 사무엘 4장에 나오는데, 블레셋과 전쟁이 벌어졌는데, 4천명이 죽음을 당합니다. 나름대로 이유를 분석한 결과 법궤를 가져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실로에서 법궤를 가져나와 2차 전쟁에 임했는데, 오히려 3만명이 죽고, 나아가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고, 그 소중한 법궤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황당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번에는 법궤를 매고 전쟁에 나왔는데이유는 그들에게 믿음은 없으면서 법궤를 마치 부적처럼 생각하고, 그저 몸에 지니기만 하면 되겠지..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그저 부적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따르고 순종할 때 하늘의 복을 누릴 수 있는데, 나는 순종함이 전혀 없이 말씀이 나를 성공하게 만들고, 나에게 이익을 주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두번째 사건은 벧세메스의 사건입니다. 법궤를 빼앗겼던 수난을 뒤로하고, 법궤를 돌려받아서 벧세메스로 돌아왔는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다가 그만 법궤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합니다. 호기심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게 하는 창의력을 키워주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호기심은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자신의 내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합니다. 나아가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앞서게 만듭니다. 결국 법궤의 뚜껑을 열어 들여다보다 그만 죽음을 당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지적인 호기심, 성경에 대한 지식을 채우는 정도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나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정도로 말씀을 대해서는 안됩니다.


세번째 사건은 웃사의 사건입니다. 호기심으로 인한 심판으로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진 후 70년동안 평안이 유지됩니다. 그런데 다윗이 아스라엘의 왕이 된 후, 법궤가 원래의 자리인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는 믿음의 생각을 갖습니다. 화려한 찬양대를 앞세워 기쁨으로 법궤를 옮기려고 하는데, 그만 불행한 일이 벌어집니다. 처음에는 법궤를 정해진데로 고라자손이 어깨에 메고 나오려고 하다가, 마음이 바뀌어 소가 끄는 수레에 싣고 나오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타작마당을 지나다가 소가 뛰니까,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대어 보호하려고 하자, 웃사가 현장에서 죽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웃사가 어떻게 보면 법궤가 혹시 수레에서 떨어질까봐 잡은 것인데, 즉사하는 심판을 받다니.. 이 사건에는 분명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법궤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구별된 레위인이 반드시 어깨에 메어서 옮겨야 하는데, 소를 이용해 수레로 옮기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는 과거 블레셋이 법궤를 반납할 때. 행했던 모습과 같습니다. 말씀을 인간적인 편리함과 세상이 추구하는 원리로 오용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웃사는 법궤가 자신의 집에서 머무르는 동안 너무 친숙한 나머지 법궤의 주인행세를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하나님보다 앞서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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