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0 16:36
절망에서 희망으로 Viktor Emil Frankl (26 March 1905 – 2 September 1997) 나치스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던 빅토르 후랭클(Viktor Frankl) 박사는 어느 날 유태인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로 갑자기 체포되어 아우쓰비쯔 수용소에 보내진다. 우리가 영화 「신들러스 리스트」에서 본 것처럼 거기서 그는 인간으로써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한상황을 몸소 겪고 살아 남아서 쓴 책이 바로 <Man’s Search for Meaning:우리말 번역본으로는 수용소의 경험>이다.
수용소에 들어가자마자 몇십 명밖에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감방에 200명이 수용되었고 다섯 명에 담요 한 장씩 배당되어 첫 겨울을 지내는데 모두들 그런 형편이라도 살아있다는 것 만도 감사하게 생각하였다. 나치는 수시로 노약자, 병약자를 골라서 가스실로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들 거기에 끼지 않으려고 나이를 속이고, 병이 나도 건강한 척하고, 온갖 굴욕을 감수하면서 나치스의 명령에 복종하였다.
이렇게 시일이 흐르면서 후랭클 박사는 수용된 유태인들의 인격이 하나 씩 파괴되는 과정을 보게된다. 첫 번째는 환상을 갖는 단계이다. 상황이 점점 더 비극적으로 되어갈수록 수용소 유태인이 누구나 할 것 없이「누군가」에 의해서 자기들이 구출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되더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곧 죽을 사형수들까지도 지금 바로 어떤 돌발사태가 발생하여 자기만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랭클 박사는 「당시 유태인들에는 환상만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고 술회하였다.
그 다음은 절망하는 단계이다. 독일군이 연합군에 의해서 패망하고 자기들은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구출될 것이라는 희망 하나 붙잡고 고통을 감수하였는데 들리느니 독일군이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는 소식뿐이었다. 따라서 구출되리나는 환상이 깨어지고 그 자리에 절망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는데 이렇게 되니까 사람들이 점점 이상하게 변하더라는 것이다. 우선 사람들이 지독하게 냉소적이 되어서 자신과 동료의 삶을 비웃고, 빵 한 조각을 위해서 동족을 밀고하는 등 사람들이 치사해지고 그리고 동료의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한편 자신들도 「자살」의 유혹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포자기하는 단계이다. 환상일 망정 어떤 가능성을 바라보았을 때는 그래도 의연하게 위신을 지키던 사람들이 절망적인 현실을 깨닫는 순간 모두가 동물적 본능만의 인간으로 바뀌는 것을 저자는 보았다. 다들 빵, 담배, 설탕, 목욕 이 네 가지에만 관심이 있고 그 외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해졌다는 것이다. 후랭클 박사의 글을 몇 줄 인용한다. 「한 사람이 죽자 나는 아무 감정 없이 다음의 장면을 보았다. 아직도 따스한 온기가 있는 시체를 향하여 감옥소 동료들이 접근한다. 한 사람은 흩어진 감자 조각을 집는다. 다른 사람은 자기 떨어진 구두를 시체의 것과 바꾼다. 다른이는 겉옷을 벗긴다. 이 장면은 사람이 죽을 때마다 계속되었다.」
마지막으로 죽어 가는 단계이다. 미래에 대한 신념의 상실되자 사람들은 영적인 뒷받침이 무너지고, 영적인 뒷받침이 무너진 사람은 바로 정신적인 육체적인 병에 결려 쓰러져 버린 것을 보았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에게 바로 죽음이 찾아오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후랭클 박사는 대다수의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살아 남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살아 남는 사람은 평소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인한 사람들이 아니고 아주 평범한 사람, 그것도 자기의 가족 중 누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아내가, 아니면 딸이, 혹은 아들이 지금 어느 동(棟)에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즉, 소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그는 이런 결론을 내었다. “인간은 내일을 향해 살아갈 소망이 사라진 순간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구나!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소망이 있는 사람은 그 상황을 견디어 낼 수 있구나!”
그래서 후랭클 박사는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이라고는 죽음의 행렬 뿐인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는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이런 곳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생존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난 곧 이곳을 나가 사람들에게 강의하게 될 것이다. 나는 행운아다. 나는 축복받았다.”
요즘 다들 경기가 좋아졌다고는 하는데 주변에서 느끼는 경기체감은 춥기만 하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데 죽고 사는 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없는 것이다. 후랭클 박사는 그 정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이라는 한 줄기의 빛을 찾았다. 결국 그는 믿음대로 수용소에서 살아서 나오게 되었고, 그 후 실존적 의미의 정신 분석 요법(logo-therapy, 의미요법)을 창안하는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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