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13 15:14
칠순(七旬)
(조 나라의 명장 염파(廉頗: 생몰연대 미상)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조(趙) 나라에는 염파라는 대단한 용장(勇將) 있었다.
염파는 기원전 283년 진(秦)을 쳐서 석양(昔陽)을 차지 하더니 다음해에는 제(齊)를 쳐서 양진(陽晉:지금의 산동성)을 빼앗았다. 연(燕)이 침입하자 이를 맞받아 쳐서 연군을 크게 깨뜨리고 오히려 연의 도읍을 포위해서 다섯 성(城)을 할양 받았고, 기원전 245년 위(魏)를 쳐서 번양(繁陽:지금의 하북성 내황현)를 함락시켰다. 하여튼 그 시대 최강의 나라인 진 나라도 염파 장군이 무서워서 약소국인 조 나라를 건드릴 수 없었다.
그런데 세월에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염파 장군도 늙기 시작했다. 염파를 아끼던 효성 왕이 죽고 이어 즉위한 도양왕(悼襄王)은 염파에게 “그만 쉬시라”고 통보한다. “내가 왜 노인이냐? 내가 나라에 얼마나 공훈을 세웠느냐?” 너무나 섭섭하고 분했던 염파 장군은 후임자로 온 악승(樂乘)을 공격하여 패주시키고 자신은 위 나라로 망명해 버렸다. 이 때는 이미 염파 장군 70이 넘은 나이였다.
염파 장군이 없는 조 나라는 진 나라의 좋은 먹이 깜이었다. 진 나라는 크고 작은 군대를 보내 조 나라를 괴롭혔는데, 견디다 못한 조 왕이 염파를 다시 불를 생각으로 일단 사자(使者)를 염파에게 보내 (그 고령의 나이에도) 장군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지를 알아 보도록 했다. 그 때 염파는 이미 80이 거반 다 된 나이였지만 자기가 늙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자 앞에서 한 말의 밥, 열근의 고기를 먹고, 갑옷에 투구를 쓰고 말위에 올라타서 장창을 휘둘르며 달려 보이기까지 하였다. (一飯斗米肉十斤, 被甲上馬, 以示常可用).
그런데 옛날부터 염파 장군과 원수지간이었던 간신 곽개가 사자를 이미 매수해서 염파가 다시 등용될 수 없도록 손을 봐 놨다. 사자는 돌아와서 왕께 복명하기를 “염 장군은 늙었어도 아직 근력이 왕성하고 식성이 좋았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한 말이나 되는 밥을 먹고 열근이나 되는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갑주투구를 쓰고 말위에 올라서 마치 바람같이 달렸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 다음 사자는 한 마디를 더 붙혔다. “그런데, 신과 같이한 자리에서 염 장군은 똥을 세 번이나 쌌는데 본인은 알아 차리지 못하더군요 (三度遺失).” 얘기는 거기서 끝났다. 왕은 더 이상 염파 장군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멀쩡한 사람 하나 병신되는 것은 말 한마디로 족한 가보다.
내 나이가 금년 70이란다. 아들과 딸이 준비한 7순 음식상을 받으며 나는 문득 사마천이 쓴 사기열전에 나오는 염파 장군을 생각했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당신 늙었으니 이제 집에 가서 쉬시오”하는 말이 뭐 그리 섭섭해서 열불이 났을까? 그런데 어쩌랴. 내 마음은 젊고 기분은 훨훨 날아갈듯 싶어도 주위에서 그렇게 봐주질 않는 것이다. 나이가 많으면 누구던 일단 노인으로 취급된다. 잘 대접받아서 듣는 소리가 “아직 정정하시네요”아닌가.
나는 요즘도 하루 두 세 시간씩 운동을 하고 임대해 주고 있는 아파트 건물에 틈틈이 가서 청소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전에는 칠십 노인하면 ‘꼬부랑 할아버지’로 생각했는데 내가 어느듯 그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직은 원기왕성하게 바쁘게 산다.
그런데 달라진 것은 있다. 시력이 약해 졌는지 책을 좀 오래 봤다 싶으면 눈이 아프고, 써 놓지 않으면 뭘 자꾸 잊어버리고, 귀는 아직은 잘 들리는데 말귀를 잘 못알아 듣는지 듣은 얘기를 묻고 또 묻는다. 이해가 늦는 모양이다. 인간은 어차피 살다가 늙고 병들고 그런 다음 죽게 설계되어 있는 동물이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서 늙는다는 것은 누구나 거쳐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우리는 가끔 염파 장군처럼 늙음에 저항한다.
런던 대학의 생물학과 명예 교수인 루이스 월포트(Lewis Wolpert)는 그의 저서 <당신 참 좋아 보이네요: You are looking very well>에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 ‘기네스북에 오른 최장수 운동선수’ ‘100세가 넘은 나이에도 아직 교직에 있는 노인’등의 삶을 조명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나이 듦을 부정하지 않고, 신체에 나타나는 노화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리고 명랑하고 유쾌하게 산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 나이가 되면 마음을 비우고, 사소한 것에 억매이지 않고, 어지간 하면 다 내려 놓고 사는 것이다.인생 70대는 결코 인생 쇠퇴기가 아니고 오히려 경륜이라는 지혜가 가장 왕성할 때란다. 나도 남은 생애 유유자적하며 물 흐르듯 구름 넘어가듯 내가 하고 싶은 일 즐기며 유쾌하게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