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4 13:52
한국일보 2014년 7월 25일자 김정수 칼럼 총리, 장관 후보들이 국회동의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줄줄이 낙마하는 요즘의 대한민국 현실을 보면서 새삼 중국 삼국시대에 조조가 내린 구현령(求賢令)을 생각했다. 거의 이길 것 같았던 적벽(赤壁)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게 무참히 패배하고 돌아온 조조는 이듬해가 되는 건안 15년 (서기 210년), 절박한 심정으로 구현령(求賢令)을 내렸다. “나라의 인재를 찾으라!” 적벽대전 이후 유비는 지금의 사천성 지역인 파촉(巴蜀)과 그 인접 형주에서 둥지를 틀어 세를 키우고 있고, 손권은 양자강 이남 강동(江東)지방에서 자리를 잡고 기반을 굳혀가고 있다. 전국시대의 많은 군벌들이 그 때 쯤에 모두 정리되면서 이른바 조조의 위(魏)와 더불어 삼국(三國)이 정립(鼎立)된 것이다. 조조가 차지한 지역은 면적이 넓고 인구는 많지만 ‘황건적의 난’이래 군벌들의 계속된 전쟁으로 피해가 가장 많았던 곳이다. 이제 승상(丞相) 조조는 나라를 새로 새운다는 각오로 농경지를 복구시키고, 산업을 이르키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제도를 정비하고, 국방을 강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방법은 단 하나, 인재를 얻어 적재적소에 일을 맡기는 뿐이다. “인재를 찾아라!” “예로부터 왕조를 부흥시키거나 치세를 잘한 황제는 모두 훌륭한 인재의 도움을 받았다. 현명한 사람을 발견하려면 웃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현명한 사람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청렴하고 결백한 선비가 아니면 안된다느니, 신분이 낮아서 못쓴다느니 하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가 언제 현인을 찾을 것인가? 누구라도 좋다. 오직 재능만 보고 천거하여 내가 그들을 얻어 기용케 하라.” 조조가 신뢰하는 부하로 곽가(郭嘉: 170-207)라는사람이 있었다. 이사람은 머리가 좋고 판단이 정확해서 크고 작은 전투에서 조조를 도와서 많은 공을 세웠다. 조조 역시 “나의 대업을 성취시킬 수 있는사람은 오로지 곽가 뿐이다”라고 하며 소중하게 대하였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지나치게 주색을 탐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런 지저분한 소문을 관대하게 덮었다. “옥(玉)에 티가 좀 묻은들 옥이 아니랴” 품행이 좋지 않아도, 다소 인격적인 결함이 있어도, 그리고 실수한 전력(前歷)이 있어도 그 사람이 능력이 있으면 발탁해서 쓴 것이다.
진수가 쓴 삼국지 위서에 의하면 조조는 214년, 그리고 217년에 다시 나라에 구현령을 내렸다. “품행이 바른 인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진취적인 것도 이니고, 진취적인 인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품행이 바른 것은 아니다. 한신과 진평은 더러운 평판과 부끄러움을 지니고도 마침내 국가대업을 이룩해서 명성이 천년을 이어지고 있다. 오기는 탐욕스러운 장군으로 부인을 죽이고도 자신의 행동이 옳았다고 믿었고, 사방에 뇌물을 주어 관직을 구했으며 어머니가 사망했어도 고국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위나라에 있으면 진나라 사람들이 감히 위를 침입하지 못했고, 그가 초나라에 있을 때는 한 위 조 세나라가 초를 넘보지 못했다. 이런저런 평판을 볼 것 없다. 재주있는 사람이면 빠짐없이 천거하라.”
조조에게는 청하 공주라는 예쁜 딸이 있었는데 당시 정의(丁儀)라는 훌륭한 청년을 조조는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청년 눈이 사팔인데다가 너무 못생긴 것이다. 조조의 아들 조비(曺丕)가 급히 달려가서 아버지를 말렸다. “사람은 좋은데 용모가 너무 추해서 동생을 시집보낼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조조의 대답. “인재를 등용할 때 재능이 있는 사람을 천거해야 하듯이 사위를 선택할 때도 덕망과 재능을 겸비한 인물을 구해야 한다. 그 청년이 박학하고 다재다능한 이상 외모를 따질 것 없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다.”
대통령에게 지명된 장관후보자 총리후보자들은 아들의 병역, 논문표절, 아파트 투기, 위증, 세금, 하다못해10여년전 교회에서 했던 간증까지, 벼라별 문제 때문에 ‘지명철회’, ‘사퇴’ 등이 줄을 잇는다. 그렇게하는 것이 공자님이나 부처님에 버금가는 성인군자를 뽑자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물정 모르는 벽창호를 뽑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있겠는가? 아마 이런 식으로 후보자들을 검증하자면 능력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청문회를 통과할 것 같지 않은데, 진짜 코메디인 것은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여대는 사람들 일수록 자신은 뒤가 더 지저분하다는 사실이다.
요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세월호를 삼킨 맹골수 물살 보다 더 거칠고 험하다. 한-미-일의 삼각동맹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극동정책과, 이 삼각동맹을 화해시키려는 중국의 대한(對韓)정책. 북핵문제, 독도 문제, 일본의 자위대, 내부의 종북세력의 준동. 국제 경쟁 사회에서 한국의 경제 좌표, 무엇 하나 안심할 구석이 없는 것이 오늘날의 조국 현실이다. 이럴때 일수록 필요한 것은 문제를 창조적으로 수습하고 해결해 나갈 유능한 인재가 아닐가 싶다. 조금 티가 묻었어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기회를 주어 일을 시키는 것이 어떨까? 세상에 청렴결백하고 인격고결하고 능력있는 그런 완전무결한 사람이 어디 그리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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