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9 00:46
<경쟁자>를 표현할 때,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 Rival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 단어는 강을 뜻하는 River에서 파생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원적 배경을 가지고 해석을 하면 경쟁자인 <라이벌>이란 뜻은 <본래 같은 강물을 마시는 사이에서 생기는 것>이 경쟁 상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벌>은 동일 분야나 동일 업종에서 생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한국의 예를 들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미국에서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관계가 있습니다. 애플과
삼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과 라이벌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과 너무나도 비슷한 면이 많았습니다. 두 사람의 사역은 주로 말씀을 선포하며 회개에 관한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강가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는 평범하지 않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아울러 두 사람 모두 수 많은 제자들이
뒤따랐습니다. 서로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세례요한 편에서 생각해 보면 예수님에 대해 라이벌
의식을 갖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초창기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좋은 조건에 있었습니다. 그의
출생 나이 평판 경험 등 어찌나 뛰어났던지 많은 사람들이 장차 오실 메시야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제자들의
부추기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며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은 광야에 외치는 소리일 뿐 아무 존재가 아님을 선포했습니다. 나아가
<나는 쇠하고 그는 흥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자신은 감히 그 분의 신을 풀기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미천한 존재임을 표방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고 교만의 유혹을 이겨낸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흔히들 두 부류의 신앙인이 있다고 합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의 이름을 빌려 자기를 드러내고, 자신이 흥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뜻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묵묵히 주어진 사역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요한처럼 예수님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되더라도 쇠하기를 소원하는 자들입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예수님의 이름만이 영광스럽게 드러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칭찬 할 자를
우리 가운데 찾고 계십니다. 세상에서 힘든 것 중의 하나가 나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남을 아낌없이 칭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 쉽지가 않습니다. 나아가
남의 기쁨을 나의 기쁨처럼 함께 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님만을 주연으로 의지하며 맡겨진 직분과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조연들을 찾고 계십니다.
// 조 병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