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6 15:43
사순절 기간을 통해 십자가를 묵상하다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용서’입니다.
우리는 용서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는데,
막상 용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왜 그럴까요?
무엇보다 용서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첫째로 용서를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서는 마치 상대방의 잘못을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분명 상대방을 미워하고 그 사람을 멀리 할 수도 있는데,
내가 양보하고,
더 나아가 손해보는 듯한 생각을 합니다.
용서하면 자신이 진다고 생각까지 합니다. 이것은 오해로 용서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길을 가다가 적에게 독화살을 맞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혜로운 사람은 독이 몸에 더 이상 퍼질 수 없도록 빨리 독화살을 뽑고 응급치료부터 합니다.
그러나 엉뚱한 사람은 독화살에 맞았음에도 분하고 억울해서 화살을 쏜 적을 잡아보겠다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닙니다.
결국 시간이 흘러 독이 온 몸에 퍼져 서서히 죽게됩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하지 못한 자의 비극입니다.
용서는 독화살을 뽑아 내는 것으로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둘째로 용서는 나약한 자가 하는 것으로 상대방의 악한 것을 내버려 둔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악을 응징하기 위해서 복수를 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수 한다’는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당한 것 이상으로 더 큰 악들을 저지릅니다.
칼은 또 다른 칼을 불러,
끝이 없는 보복이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높은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죄를 응징하고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방법은 복수가 아닌 용서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마지막 기도가 용서의 기도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신들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용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강한자만이 베풀 수 있는 용기입니다. 셋째로, 용서를 사람 앞에서 하는 것으로 화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용서와 화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