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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컬럼

믿음으로써 말하느니라

2020.08.16 12:15

Master 조회 수:1513

이런 이야기 있습니다.  오래전에 아버지와 아들이 중동의 사막지역을 여행하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립니다. 여러 날 동안 정처 없이 방황하는데, 사람이 사는 마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탈진상태가 되어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바로 그 때  그들의 눈에 공동묘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완전한 절망에 빠져버립니다. “아버지, 이제 모든 것은 끝장났어요. 우리같이 길 잃은 사람들이 결국 헤매다가 죽은 무덤이 바로 여기 있어요. 이제 우리도 저 사람들처럼 죽어서 무덤에 묻힐 거예요” 그러나 아버지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아들아 그게 아니란다. 공동 묘지가 있다는 것은 분명 사람들이 이 부근에 살고 있다는 것이지.  가까운 곳에 인가가 있을거야!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가보자” 누구의 말이 옳았을까요?  두 사람은 육신의 눈으로  발견된 무덤을 똑같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무덤을 바라보는 태도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들은 보이는 현상 그 자체만을 보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도 비록  힘들어 죽어가고 있지만, 무덤 안에 들어있는 죽은 시신을 보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죽은 사람들을 장사 지낸, 산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공동묘지가 있다’는 것은 ‘그 무덤을 만든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죽음 너머에 있는 소망과 희망을 발견한 것입니다. 긍정적인 믿음을 가졌습니다.  결국 이 두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을 사람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이 옳았던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은 똑같지만, 어떤 태도로 바로 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육의 눈' '영의 눈'의 차이입니다.  육의 눈을 가진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고 삽니다. 이것이 바로 죄와 죽음의 권세아래 사는 자들의 실체입니다.  


보이는 상황과 문제들을 예리하게 바라보고 판단하여 분석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 하나님의 손길,영원한 것은 보지 못합니다. 반면에 영의 눈을 가진 사람은 어떻습니까? 때로는 현실이 어려운 절망의 상황일지라도, 상황너머로 일하시며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합니다. 이로 인해 잠잠히 기도하며 기다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실제를 다룬 믿음장입니다. ‘믿음’ 이란 단어가 무려 25번 나오고, 믿음의 사람이 18명 등장 합니다. 우리는 이 장을 읽을 때에 최소한 2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과거 믿음의 조상들이 남겨놓은 믿음의 내용들은 단순히 그들 만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감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믿음이지만, 역사적인 남의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둘째로 우리도 믿음으로 살 것을 요청 받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믿음의 약속들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25년이란 세월을 통해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약속을 주셨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이뤄주십니다. . 그러기에 우리는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이 있어야만 합니다

/ 조 병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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