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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의 임진강 전투 -김정수 칼럼-

2014.09.02 10:02

wind 조회 수:6839

내가 군에서 처음 복무한 곳은 경기도 신산리에 사단 사령부가 있던 육군 보병 제 25사단이다. 6.25 전쟁 당시 지역에서 영국군 여단이 중공군의 압도적인 인해(人海)전술에 맞서 최후의 일인까지, 마지막 총알 한발까지 쏘면서 싸웠다.

 

1951 중공군의 1 춘계 공세 당시 영국군 29여단은 미 1군단에 작전 배속되어서 좌측으로 한국군 1사단과 우측으로 미군 3사단 터키 여단과 함께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한국군1사단이 중공군 집중 공세를 당하지 못하고 뒤로 밀리는 바람에의 그만 여단의 좌측방이 노출되면서 여단은 중공군 제63군의 3 사단 4만 2천명에게 포위되었다.

 

그러나 영국군 여단은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압도적인 숫자의 중공군에 맞서서 정밀한 사격과 적절한 보병과 기갑 전술을 구사함으로  적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마침내29여단에게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여단 측방 설마리 지역을 방어하던 글로스터 대대가 여단 병력의 철수 엄호를 맡게 되었다. 그래서 글로스터 대대의 병력 750명은 서울 쪽으로 밀려드는 중공군제63 전체 전력(戰力) 표적이 것이다.

 

퇴로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글로스터 대대는 72시간 동안 한번 붙히지 못하고, 48시간 동안 먹지 못하면서도 중공군 공격을 일곱차레나 물리쳤다. 사상자가 계속 느는 가운데 기관총은 총열이 빨갛게 달아 오를 때까지 쏘아 대었고, 소총병들은 수류탄을 굴렸고 급할 때는 육박전으로 적을 물리쳤다. 희생자가 점점 늘어나고 탄약이 바닥을 보이자 대대장은 설마里의 235 고지 정상 주변을 따라 방어선을 축소 구축하면서 병력을 한군데로 모았다.

 

지원부대는 옵니까?” “기갑 부대가 출동했으나 적의 공격에 막혀 되돌아 왔다.” “항공 지원은 있습니까?” “방어선이 너무 협소하다. 항공 지원을 없다.” “ 지원은 언제까지 가능합니까?” “앞으로 없다. 이곳 전세도 급하다. 귀관의 능력을 믿는다. 무사히 후퇴하라.” 대대장 카니 중령과 여단장 부로디 준장의 무전기 대화였다. “지금부터는 무전기를 사용할 없습니다. 밧테리 생명이 되었습니다.” 대대장은 이제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이제 각자 알아서 후퇴한다. 나는 부상병들과 함께 이곳에 남겠다.” 그러자 군종 신부가 남았고, 대대 군의관이 부상병과 함께 남았다.

 

설마리 전투라고 이름된 전투에서 글로스터 대대원 중 50명이 전사하고 526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56명만이 탈출에 성공했다. 나머지는 행방 불명. 영국군은 이  3일간의 전투에서 비록 중공군을 격퇴시키지는 못했지만 중공군에게 막대한 출혈을 강요함으로 서울로 진격하려던 중공군의 발목을 잡았다.

 

1967년에 임관한 나는 직책이 사단 통신중대의 소대장이였지만 주특기가 통역이여서 미군 고문관이 왔다거나 아니면 인접 미군 부대와 협조할 사항이 있으면 수시로 불려가서 통역을 했는데 어느 초여름 날인가 사단 사령부에 불려갔더니 이번에는 영국에서 손님들을 영국군 참전 기념비가 있는 적성(積城)까지 안내를 하라는 것이다.

 

손님은 댓명 정도로 대부분 노인들이고  40 장년이 있었는데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가씨도 하나 있었다. 버스로 이동을 하면서 할머니가 계급장을 가르키며 그게 무슨 계급이냐” 물었다. 소위라고 대답을 하니까 살이냐고 물었다. “22살입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들은24살이였고 계급은 중위였다” 말한다. 아들이 전사한 곳을 죽기전에 한번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남편이 상사였다는 아주머니는 딸을 데리고 왔다. 남편이 임진강 전투 중일때 낳은 딸이라고 했다. 손자가 스무살이였다는 할아버지. 그리고 소대에서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장년. 모두가 사연과 그리움을 안고 이곳을 찾은 것이다.

 

한국전에서 영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하였다. 인원 8만 7천명이 참전하여1,109명이 전사하였고, 2,674명이 부상당했다. 대부분 20 안팍의  젊은이들이 생전 알지도 못하던 Korea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매년 4월이면 아직 생존중인 영국군 참전 용사들, 혹은 전사자 가족들이 임진강 전투유적을 찾는다. 6.25 전쟁때 피흘려 싸워준 UN군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구가하는 대한민국의 번영도 없다. 우리는그분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해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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