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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 숭정 -김정수 칼럼-

2014.08.07 13:35

wind 조회 수:6175

명나라의 숭정(崇楨) 17(1644), 밖으로는 청나라의 대군이 만리장성의 동쪽 산해관(山海關)을 공격하고 있는 틈에 이자성(李自成)이 도둑의 무리들을 이끌고 산서(山西)를 횡단하여 곧바로 황성(皇城)인 북경을 기습하였다. 名將 오삼계(吳三桂)가 지휘하는 정부군 정예부대가 대부분 전방에서 배치된 상황에서 도둑들이 그만 후방 무방비의 허를 찌른 것이다. 적군이 황성(皇城)을 에워싸고, 그야 말로 나라 존망의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황제가 백관을 소집하였으나 입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도망한 것이다. 이윽고 성문 근처에서 한 두차레 소규모 충돌이 있은 후에 수비군 마져 무기를 버리고 모두 도망치자 황제의 가장 큰 신임을 받아서 전권을 휘두르던 환관 조화순(曺化淳)이 제일 먼저 성문을 열어서 자기만 살자고 항복하였다.

 

황제는 급한 대로 황궁안에 있는 景山으로 올라가서 피하였으나 꼭대기까지 가서는 더 갈 곳이 없었다. 황제를 색출하려는 반란군의 횃불이 바다를 이루어 산을 에워싸자 35세의 젊은 황제는 아들들은 자금성으로부터 탈출시키고 황후와 황녀를 손수 죽인 후 자신도 자살하였다. 나중에 반란군이 황제 옷깃의 유서를 확인하니 “내 몸은 적()이 찢도록 맡기나 내 백성은 하나도 상하게 하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이 때 명나라 대대로 녹을 먹던 그 많은 귀족 고관대작들은 모두 도망가고 왕승은이라고 이름하는 외로운 환관 단 한 명이 황제를 따라 순사 하였을 뿐이다. 바로 명나라 276년의 마지막 황제 숭정 장렬제(壯烈帝) 이야기이다.

 

1780(정조 4)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7순 축하 조선 사절단의 수행원이 되어 북경으로 가는 도중 당시의 격전지를 지나게 되었다. 명나라의 大軍이 숫자상으로 그 몇 분의 일 밖에 안되는 청태조의 정예 팔기군에게 박살이 난 산해관(山海關)에서 고교보(高橋堡)를 지나 송산과 행산을 거치는 길이었다. 당시 명나라 지휘관들은 모두 당대에 내노라하는 유능한 장수들이었고 정부군 역시 역전에서 단련된 정예군이었으나 이 군대를 잘 뒷받침 하여야할 후방의 정치가 무능하고 혼탁하니 전투가 될 리 없다. 명나라 야전군 최고 사령관 원숭환(袁崇煥)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자 전의(戰意)를 상실한 명나라 대군 13만은 청 태종 애친각라(愛親覺羅)의 기병 몇 천에게 포위되어 추격을 당하다가 송산과 행산 이라는 곳에서 거의 전멸을 당하는비운을 겪는다. 이 전투에서 명군의 전사자는 5 3 7백 여명인데 청군의 피해는 경미한 부상자 겨우 8명이었다니 이쯤 되면 이것은 이미 전투도 아닌 일방적인 학살(虐殺)인 것이다. 참으로 전쟁은 숫자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임을 우리는 여기서 다시 본다.

 

연암 선생은 그의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당시의 전쟁기록을 간단히 요약하면서 자신의 소감을 밑에 적어 넣었다. “아 슬프다. 각라(청 태조 愛親覺羅)는 관외(山海關 밖의)의 자성(李自成)이요 자성은 관내(山海關 안쪽의)의 각라였으니, 어찌 明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안팎의 강적이 창끝을 들여대고 덤비니 大明帝國인들 어찌 당하겠느냐는 말이다. 적군이 황성을 에워싼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어떤 측근이 황제에게 포위망을 뚫고 도망쳐서 남경으로 천도하자는 의견을 내었던 모양이다. 이에 황제는 “국군(國君)은 사직(社稷)에서 죽어야 하나니 짐()이 또 어디로 가겠는가?”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보아 나라가 망할 때는 꼭 망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정치가 무능력하고 관리가 부패하면 온간 부조리가 성행하고, 또 어처구니없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다보면 그 틈 사이로  외적(外敵)이 침입한다. 공로가 있는 사람이 인정을 못 받고 오히려 모함을 받는다면 유능한 사람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明도 나라가 망할 때쯤 말기적 증상을 보여서 어려서 영민 하였던 황제는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듣기 좋은 말에만 귀를 기울이게 되고 아첨 배의 농간에 놀아나게 되었다. 바른말과 그른말을 구분하지 못하여 아까운 인재들을 무고하게 희생시키고 유능한 참모들을 배척하였으니 주변에 어떤 忠臣 열사가 있어서 이런 위기에 황제와 운명을 같이 하겠는가? 그리고서 “멋진(?) 패배자”가 되어 비장하게 최후를 장식한들 그것이 후세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줄 수 있을까? 사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업을 키우고 성공시키는 것이 중요하지 사업을 망치고 비장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 따위는 신파연극에서나 나오는 어설픈 장면을 뿐이다.

 

지난 번 북경을 방문하였을 때 숭정 장렬제가 최후를 맞은 경산에 올라 보았다. 호수를 판 흙으로 쌓았다는 조그만 산이다. 여기서 세계사에 찬란한 대제국 명나라가 276년 만에 그 최후를 맞은 것이다. 산에 올라서 필자는 한 나라가 어떻게 망하고 한 기업이 왜 문을 닫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봤다. 명나라는 연암선생이 한탄한 대로 외침(外侵)과 내란(內亂)이 한꺼번에 겹쳐서 망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여 스스로를 망친 것이다. 황제는 자기의 딸들을 죽이면서 그랬단다. “너희는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황녀로 태어났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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