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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낭콩 보다 더 푸른 -김정수 칼럼-

2014.06.23 10:12

wind 조회 수:6415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더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더 강하다.

아! 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의 시 논개(論介) 중에서


임진왜란에서 진주 싸움은 크게 두번인데 첫번이 유명한 진주대첩이다. 즉, 1592년(선조25년) 10월 5일 일본군은 하시바를 대장으로한 3만 명의 대군으로 영남의 요지인 진주성을 공격하였으나 의병장 곽재우가 성밖에서 적의 후방을 교란하고 진주목사 김시민은 병력 3천 8백 명으로 성을 굳게 지켜 적을 물리친 것이다. 이 진주성 전투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육전(陸戰)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로서 이순신의 한산대첩, 권율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 3대첩(壬辰三大捷)으로 꼽힌다.


진주 싸움 두 번째가 다음해인 1593년인데 명나라의 참전과 조선군의 전투력 증강으로 사기가 저하된 일본군은 강화를 모색하는 한편 전선을 축소하여 병력을 영남 쪽으로 이동시키는데 이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군의 철수를 허락하면서 그대신 진주성 공략을 지시하였다. 따라서 일본군 9만 5천명이 불과 몇 천명의 병력으로 고립된 진주성을 10일간 주야로 공격하여 6월 29일 드디어 성벽을 붕괴시키고 성내로 돌입한다. 수적으로 열세인 아군은 적과 뒤섞여 혈전을 전개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계속 남강 쪽으로 밀려났으며,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일부 장령(將領)들은 적진에 뛰어들어 장렬한 최후를 마쳤고 또 일부는 북향 재배하여 임금에게 하직을 고한 다음 남강에 투신하였다. 논개의 애인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 최경회(崔慶會)도 이때 부상당한 몸을 남강 물에 던졌다. 진주성 점령 후 일본군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도륙하여 제1차 진주성전투의 패배를 분풀이하였는데 이 때의 희생자는 관민 합하여 6만 명에 달하였다고 선조실록에 기록되어있다.


필자가 진주 남강에 가본 것이 1951년인가 싶다.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중이던 아버지는 밀리는 전선을 따라 다급하게 낙동강 쪽으로 후퇴하였고 20대 나이 만삭의 어머니는 다섯 살 필자의 손을 잡고 피난을 간 곳이 친정이 있는 전주. 우리는 거기서 인공(人共)치하를 아슬아슬하게 보냈다. 아버지 생사도 모른 채 여동생이 태어나고 그리고 얼마가 지나고 서울이 수복되었으나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전투가 한창이던 어느 날, 어머니는 뜻밖에 편지를 한 장 받고 그 큰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아들을 품에 안았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단다.


” 아버지는 부산에서 ‘무슨’ 군사반 교육중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갓난아이 내 누이동생을 친정에 맡긴 채 어린 나를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 부산으로 떠났다. 전주에서 남원까지 또 거기서 어디까지, 버스를 타다가 트럭을 타다가 길이 끊어진 곳에는 걷다가 하면서 몇 일길, 이제 내일이면 차편이 있어서 부산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하는 어느 날 우리는 진주에 도착하여 겨우 안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묵었다. 단팥죽을 사달라고 조르는 나를 어머니는 얼러가면서 떡을 얼마큼 사서 남강 촉석루 아래서 펼쳐놓아 저녁 끼니를 때우며 들려준 것이 논개의 이야기였다.


“옛날 옛적에 임진왜란이라고 하는 큰 난리가 있었는데, ...진주사람들이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한 마음으로 왜놈들과 싸웠으나 다 죽고, 왜군들이 바로 여기서 이겼다고 잔치를 했는데, 논개라는 기생이 적군 대장의 목을 안고 같이 물에 빠져 죽었단다. 아마 이 부근이지 싶다.” 변영로 시인이 노래한 대로 논개는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춘” 것이다. 지금도 눈에 생생한 것이 너무도 곱고 깨끗한 모래사장이 촉석루 아래로 이어져 깔려 있었고 강낭콩보다 더 푸른, 아마도 더 짙은 녹색이 흐르는 강에 헌 나룻배가 하나 석양 노을을 받으며 반쯤 잠겨있었던 기억이다.


며칠 전, 친구 부인 고향이 진주여서 반가운 마음으로 남강의 안부를 물었다. “어릴 때 기억이었지만 강물은 너무도 짙은 녹색이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지금은 공해에 쩌들어서 까만 색입니다.” 또 “모래사장은 너무도 깨끗한 은빛이었습니다.”라는 말에 부인은 “제가 어릴 적만 해도 그랬었습니다 만,” 하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國破山河在, 나라는 파괴되었어도 조국산하는 그대로” 라고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노래하였는데 우리는 지금 國興山河廢, 나라 경재력은 부흥되었어도 산하는 병들어서 논개가 몸을 던질 남강이 없음을 슬퍼하고있다. 


필자는 그날 남강을 꿈꾸었다. 아미(蛾眉), 반달 같은 높은 눈섶의 젊고 예쁜 어머니는 의암(義岩) 바위 위에서 함박 웃음을 머금었는데 꿈속에서 어린 필자는 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무수히 떠서 흘러가는 꽃잎들을 보았다.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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