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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메모아 -김정수 칼럼-

2014.06.23 07:06

wind 조회 수:6197

<아래는 오래전에 쓴 글입니다. 컴퓨터에 저장했던 것을 모처럼 꺼내보았습니다. >


쿡(FRED COOK)이 쓴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 1962)를 읽으면서 필자는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쿠바 봉쇄를 결정하기까지의 미 정책 결정과정이 마치 운동경기처럼 일정한 “룰(RULE)”을 가지고 질서있게 진행되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닉슨의 서거 소식을 듣고 그의 회고록을 다시 꺼내어 읽어본다. 회고록에는 소련과 군축협상, 중공과의 국교 정상화, 월남전 종식을 위한 파리협상 등, 닉슨의 외교가 화려하게 펼쳐지는가 하면, 처음에는 정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워터게이트 사건이 대통령 사임에까지 이르게 하는 미 정치의 진행과정이 적나라(赤裸裸)하게 소개된다. 역시 미국의 정치는 운동경기처럼 사건의 진전과 정책결정이 단계 단계 마다 질서 있게 엇물려서 돌아가고 있었음을 본다. 미국은 역시 “룰”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1972년 당시 닉슨 미합중국 대통령은 역사적인 중공 방문을 앞두고 프랑스의 위대한 작가이며 철학자인 앙드레 말로를 백악관에 초청하였다. 1930년대를 중국 대륙에서 보내면서 모택동, 주은래등 중공 지도자들과 교분을 쌓아온 앙드레 말로는 후에 돌아와서 “앙티 메모아(反 回顧錄)”라는 회고록을 집필하였는데 그중 중공 지도자들을 묘사한 부분이 닉슨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우아한 불어를 품위 있게 구사하는 앙드레 말로에게 강한 인상을 받으며 닉슨은 말문을 열었다.“순수공산주의라는 자만심이 강한 중공 지도자들이 이른바 자본주의의 괴수 미 대통령을 초청하는 날이 오리라고 전에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말로는 답한다. “중국인에게 中華의식 이외의 이념은 없습니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초청합니다. 중국인은 아무것도 꺼리지 않습니다.” 닉슨은 또 묻는다. “우리는 월맹과 싸우고 있고 중공은 월맹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의 적이 아닙니까?” 말로는 다시 답한다. “중국인에게 중국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국인의 마음속에 중국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中華思想이 모든것을 포용(包容)한다...닉슨은 앙드레 말로와의 대담을 통하여 이것을 마음속 새기어 두었다.


미*중국의 정상회담이 열린 곳은 으리으리한 영빈관 같은 곳이 아니라 뜻밖에도 간단한 목조건물의 모택동 저택이었다. 책과 서류가 가득한 검소한 書齋 안에서 닉슨과의 대화가 장개석 대만 정부에 이르자 모택동은 엉뚱하게 공산당과 국민당의 우호적인 역사를 얘기 하였다. “실제로 국민당 정부와 우리들의 우호적인 역사는 그와 당신들과의 역사 보다 훨씬 길지요.” 미국인의 개념으로 듣기에는 상당히 헷갈리는 부분이었다. 국민당 정부(대만)은 중공을 공산비적(共匪)라고 표현하고 중공은 국민당 정부를 괴뢰(傀儡)집단이라고 서로 비방하지 않는가? 그런데 모택동은 닉슨 앞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우호적인 역사를 얘기하고 있다니.아무튼 닉슨은 일주일을 북경에 머물면서 여러 중공 지도자들을 대하면서 상당히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중공 지도자들이 경기의 규칙, 즉 “룰(RULE)”에 집착하지 않는, 어쩌면 “룰” 같은 것에는 超然 한듯 한 사람들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마 중국의 문화, 중화 가치관의 우월성을 확신하는데서 오는 중국인의 자신감이 회담중 자연스럽게 표현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닉슨은 후에 술회하였다.


그런데 같은 공산주의라도 월맹과 상대 하면서 중국과는 전혀 다른 감을 느꼈다고 닉슨은 회고록에서 말하고있다. 중공이 경기의 룰 따위에는 초연 한듯한 인상을 주었다면 협상 테이블에서의 월맹 대표들은 애당초부터 “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처신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이 철군계획을 발표하면 월맹은 미군 포로를 석방하겠다는 언질을 주어서 미국으로 하여금 단계별 철군계획을 발표하게 한다. 그리고는 미군이 철군예정을 발표하면 월맹은 미군포로 석방문제에는 철저하게 “오리발”을 내민다. 그 뿐이 아니다. 월남의 최대 명절인 구정에는 휴전을 하자고 먼저 제안해놓고 명절 휴무를 틈타서 대공세를 취한다. 키신저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상대방의 뒤통수나 노리는 “치사하고 더러운” 작자들이였다.


닉슨은 그 회고록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미국인 기준의 “룰”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 공산주의자들과 협상할 때는 감상적이고 허약한 자세는 금물이라는 것, 그리고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은 어쩌면 시간낭비일 수 도 있다는 것 등을 말하고 있다. 월남전이 끝난지도 사십년, 이제 무대도 변하였고 연기자도 사라졌지만 닉슨의 경험은 우리 기억속에 교훈으로 살아 남아 있다. 과연 역사는 되풀이 하는 것인가? 요즘 미국은 핵무기 개발 문제로 인하여 다시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협상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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