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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逆鱗) -김정수 칼럼-

2014.06.05 20:26

wind 조회 수:6258

()은 온순한 동물이다. 잘 다루면 올라 탈 수도 있다. 그런데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용의  목 아래 거꾸로 박혀 있는 비늘 하나, 즉 역린(逆鱗)’ 만은 건드리면 안된다. 용은 이것을 건드린 사람을 반드시 죽이고 만다.”  韓非子의 세난편(說難編)에 나오는 글이다.

 

지난 연휴에 모처럼 동네 친구들과 이재규 감독의 영화 <역린>을 구경갔다. 상영 시간이 두 시간은 넘은 것 같은데 어찌나 영화가  박력있게 전개되는지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숨 한번 제대로 못 쉬고 영화에 몰입 해야 했다. 정조 1,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들의 엇갈린 운명과 사건의 24시간을 그린 영화이다. 물론 영화이니까 상당한 허구가 가미되긴 했지만 이것은 실제 있었던 일로 역사책에는  정유역변<丁酉逆變>으로 기록된 임금 정조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이다.  

 

영화를 더 재미있게 감상하려면 정조 임금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부터 살펴야 한다. 사료에 의하면 세자는 세살에 이미 부왕과 대신들 앞에서 <효경孝經>을 외었고 , 7세 때에 <동문선습>을 독파하였으며, 열 살 나이에 소론이 중심으로  일으킨 신임사화(辛壬士禍 )를 비판할 정도로 총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자는 요즘 표현으로 진보주의자였으며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을 적개심을 갖을 정도로 싫어하는 한편 그 반대 세력인 소론 측과 가까웠다.

 

장차 왕위에 오를 세자가 노론을 싫어한다는 것은 노론으로써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였다. 세자가 이대로 왕위에 올라서는 않되겠다는 위기감으로 노론 세력은 사사건건 세자를 헐띁고 세자의 비행을 영조에게 부풀려 일러 바쳤고 급기야 역모의 누명까지 씌워서 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영조 38(1762) 5월 계비 김씨의 아버지 김한구와 그 일파인 홍계회, 윤급 등의 사주를 받은 나경언(羅景彦)이 세자의 비행 10조목을 상소하였고 이에 분노한 영조는 세자에게 자결을 명하였으나 세자가 응하지 않자 뒤주속에 가두어 죽게 한 것이다. 당시 11세의 어린 세손은 아버지가 뒤주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평생의 한()으로 가슴에 새겼다.

 

역사가들은  역대 이조의 임금 중에서 가장 개혁 지향적이고 정치적 경륜이 높았던 왕으로 정조를 꼽는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정조는 어린 세손 시절부터 참고 견디고 타협하고 기다리는 지혜를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 정조가 맨 먼저 추진한 것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예 회복이였고 시경(書經) 홍범(洪範)편에 나오는 탕탕평평(蕩蕩平平)의 왕도정치(王道政治)  실현이였다 . 그러나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정조는 먼저 규장각을 설치해서 학문을 진작시키고 신진 엘리트들을 끌어 모아서 새로운 정치를 시도하였다.  적서(嫡庶) 와 당파의 구분없이 능력 본위로 인재를 등용하고, 노비면천으로 66,000명의 노비들을 해방 시켰다. 그리고 새로운 도시로 화성을 건설하고, 중국과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국가 경영을 혁신을 시도하였다. 또한 상공업을 진흥시켜서 국가 경제를 활성시키려 한 것, 친위부대인 장용영(將勇營)을 설치하여 왕권 강화를 도모한 것, 이 모든 것이 정조의 정치였다. 정조는 학자 군주이기도 했지만 무예 또한 뛰어나서 활을 잘 쏘았고 검술 역시 능했다고 한다. 무술 교과서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普通志)도 정조 때 편찬된 것이다

 

영화에서 군사권을 쥐고 정조를 위협하였던 어영청 대장 구선복은 실존 인물로 정조가 초기에는 구슬러서 잘 써먹었으나  10년 후 반역죄로 사지를 절단해서 죽이는 능지처참형에 처한다.  세손시절부터 정조를 지키던 홍국영에게는 정적을 제거하는 모든 악역을 맡기다가 그 역활이 끝나면서 조용히 은퇴를 시켰다. 정조에게는 할머니가 되는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를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동생 김구주 일파를 피로써 숙청함으로 보복하였다. 참으로 정조는 정치적으로도 능수능란한 왕이였다.

 

비늘이 거꾸로 박혔다고 역린이다.  어찌 왕 뿐일까. 대부분 사람들에게도 남에게 보이기 싫은 약점도 있고, 마음속에 감추고 있는 깊은 트라우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서 어떤 에너지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품성이고 역량이다. 개명군주 정조가 악성 종양으로48세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11세된 아들 순조가 왕에 오르는데, 왕이 어렸기 때문에 왕실의 가장 어른인 대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맏게 되는 것이 나라의 비극이 되었다. 대비는 정조보다 5년을 더 살면서 정조가 추진했던 정책과 계획을 깡그리 취소하고 허물어 버림으로 이후 조선은 모처럼의 중흥 기회를 잃고 나라가 쇠퇴하는 길을 걷는다. 이것도 국운이라면 참으로 國運이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아들이 죽고도  10년을 더 살았다.

 

이무렵 유럽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이 있고 나폴레옹이 등장하였으며, 미국은 독립을 성취하고 워싱턴, 제퍼슨 등을 대통령에 선출하였다. 우리만 거꾸로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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