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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정 이야기 - 김정수 칼럼

2014.05.11 03:37

wind 조회 수:6307

서울 용산구에서 얼마 전까지 하남 기독치과 병원을 경영하던 김문조 박사는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심덕(心德)이 후한 부인에 5남 1여를 둔 다복한 가장이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만큼 지역사회에서도 명망 있는 유지이고 교회에 충성하는 장로님이다.


그런 김문조 박사 마음에 큰 그늘이 있었는데 그것은 두 살 때 ‘척추 카리에스’ 병으로 곱사등이 된 채 나이 50이 다 되도록 혼자 늙어가고 있는 외동딸 때문이다. 딸은 외형상으로 곱사등이 된 것 뿐만 아니고 주기적으로 아파서 못 견딜 정도로 통증을 느꼈는데 그것은 현대의학으로는 어쩔 수 없고 다만 진통제로 순간적인 고통만 달랠 수 있을 뿐이었다. 아들 다섯에 단 하나 뿐인 외동딸이니,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딸인가? 딸에 대한 불쌍한 마음이 항상 김 박사의 가슴에 사무쳐서 평생토록 하나님에 대한 한결같은 기도제목은 “하필이면 내 딸입니까?”였다.


신체 조건이 그런 만큼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딸은 더구나 열등의식에 자폐증까지 있어서 자기 방에서 온종일 라디오나 듣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식구들도 그런 딸이 있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외부사람들이 아는 것을 극도로 꺼렸을 뿐만 아니라 집에 손님이라도 오시면 딸이 방에서 못나오게 하여서 눈에 띄지 않도록 하였다. 더욱이 아들들이 장성하여 혼담이 오고갈 즈음이면 혹시나 불구의 딸이 거론되어 혼담에 나쁜 영향을 줄까봐서 극도로 “보안”을 유지하였다. 물론 결혼식장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였다.


언젠가 큰아들이 결혼하던 날, 식장에서 돌아온 막내가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는 왜 예식장에 안 왔었어?” “엄마가 오지 말랬어.” 눈치가 빠른 막내는 누나에게 “왜?” 냐고 묻지 않았다. 다만 누나의 손을 꼭 잡으며 몇 번이나 다짐했다. “누나, 그래도 나 장가갈 때는 꼭 와야해!”


한 참의 세월이 흘렀다. 막내아들이 장성하여 결혼하는 날, 식이 잘 끝나고 신랑 신부 가족들이 모두 서서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그만 신랑 식구들이 얼어붙은 듯 모두 경악(驚愕)해 버렸다. 집에 있는 줄 알았던 곱추 딸이 가운데로 어엿이 걸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가 급히 달려나가서 딸의 손을 끌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것아! 집에 있지 여긴 왜 나왔니?” 딴 때에는 어머니 말이라면 항상 순종하던 착한 딸이 이번에는 이상하게 고집을 부렸다. “나도 식구이잖아요? 내가 가장 사랑하던 막내동생이 결혼하는데 누나인 내가 왜 못와요?” 막무가내로 엄마를 뿌리치고 앞으로 나오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험악한 표정을 하면서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집에 가있어!” 그러자 딸은 울면서 돌아 나가는데, 그날 따라 딸의 곱사등이 왜 그리 더 굽어보이고 울며 나가는 뒷 모습이 어찌나 불쌍한지, 그만 아버지도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주님 왜, 하필이면 내 외동딸입니까?”


불쌍한 딸에게 야단을 쳤지만 김 박사는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그날 사돈댁과 어떻게 인사를 나누고 하객들에게 뭐라고 인사를 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김 박사는 한 번 더 꿀어 엎드렸다. 기도중에 “하나님, 앙리 뒤낭은 단 한번 처참한 전쟁을 목격하고서 세계 적십자사를 창설하였는데, 나는 어찌하여 사랑하는 외동딸의 아픔을 50년 동안이나 방관하였습니까?”하는 자책과 함께 “너는 육신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냐? 불구로 소망이 없는 자들의 어버이가 되라”는 내적인 음성을 듣는다.


김 박사는 그후 사재를 털어서 ‘소망정’ 이라는 자활원을 세웠다. 이 소망정에서는 지진아, 신체부자유자들을 치료하고 또 전과자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활 교육을 시켰는데 소망정을 세워놓고 보니 의외로 김 박사와 같은 처지에 있는 부모들도 많았고 지원자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망정은 날로 확장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김 박사의 아들 다섯 형제와 딸까지 나와서 돕게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소망정을 세운지 3개월이 되었을 때 딸에게 세 가지 변화가 있었다고 김 박사는 간증한다. 첫째, 주기적으로 앓던 척추의 고통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둘째,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부모가 죽는 날 따라서 죽겠다고 탄식만 하던 딸이 소망원에서 자신보다 더 불쌍한 장애자들이 새 삶을 찾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다. 셋째로, 폐쇄적이기만 하던 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간증을 하면서 생의 보람을 느끼고 기쁨을 회복한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정만 위해서 살던 한 의사가 불구의 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로 인하여 영혼의 긴 잠에게 깨어나게 된 것이다. “왜? 하필이면 내 딸이냐”고 50년 동안이나 한탄하였지만 소망정은 바로 그 딸을 통해서 탄생한 것이다. 김문조 박사는 1982년 장애복지사업의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받은 상급은 그 보다 더 크고 귀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평생을 괴로워하던 그 십자가가 바로 축복의 근원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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