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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소니의 용서 (1) -김정수 칼럼-

2014.10.24 15:53

wind 조회 수:5127

호랑이는 새끼를 세 마리 낳는다고 한다. 하나는 엄마 호랑이를 닮고, 또 하나는 아빠 호랑이를 닮고, 나머지 하나는 엄마도 아빠도 안 닮은 작고 비리 비리한 호랑이가 나오는데, 그런 것을 평안도 지방에서는 시라소니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호랑이 치고는 좀 띨띨한 호랑이란 뜻이다.

 

동양 최고의 협객 시라소니 이성순은 평안북도 신의주 미륵동(지금의 남송동) 태생으로 나의 아버지와는 바로 이웃에서 살았다. 어려서 유아세례를 받은 시라소니는 나의 아버지와 교회 유년주일학교를 같이 다녔고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다. 시라소니의 본명 성순의 성자는 성스러운 성()으로 신앙이 좋으신 부모님가 자녀에게 주는 이름이다. 시라소니의 아버지 이기정 장로는 체격이 좋고 힘이 장사여서 젊은 시절 씨름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우승을 해서 황소를 끌고 오셨다고 했고, 누님도 훤출한 미인이고, 바로 위의 형인 이성덕도 와세다 대학 출신으로 잘생긴 외모의 국가 대표급 스케이트 선수였다. 그러나 시라소니는 딴 식구들에 비해서 인물도 좀 빠지는 편인데다가 형보다 체구도 가늘었고 학교 공부도 별로 않했다. 아마 잘난 다른 식구들에 비해 좀 떠러진다고 해서 시라소니라는 별명이 붙은 것 같다

 

당시 천석군 부자였던 시라소니 아버지 이기정 장로는 나의 할아버지 김덕엽 장로와 아주 가깝던 친구로 신의주의 삼일교회를 함께 세우고 섬기셨는데 (삼일 교회 부지는 나의 할아버지가 바친 것이다), 장로님이 무슨 보증을 잘 못 서서 집안이 기울게 되자  시라소니는 학업을 중단하고 신의주와 만주 사이를 오가는 기차 밀수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시속 140km로 달리는 기차에 난간을 붙잡고 올라타서 압록강 철교를 지나서 목적지에 다달을 즈음에 뛰어 내리면서 밀수를 했는데 자기 홀몸 만이 아니고 밀수품을 들러매고 뛰어 타고 뛰어 내리는 위험한 작업이니 여간 몸이 빠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였다.

 

시라소니 얘기가 나오면 나의 막내 삼촌은 신이 난다. 삼촌은 어려서부터 큰 형님의 친구 시라소니의 전설을 듣고 자랐기 때문인지 시라소니의 무용담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시라소니가 검도 몇 단의 일본 헌병을 맨손으로 때려 눕혔다거나, 하얼빈에서 동양 챔피언 권투 선수를 단 한번의 박치기로 묵사발을 만들었다는 얘기 등은 내가 어려서 삼촌에게서 듣고 또 들은 레파토리였다.

 

시라소니는 싸움을 할 때는 박치기 뿐만 아니고 손 발 무릅 팔굼치 등 9가지 신체를 자유자재로 모두 사용했다고 한다. 100 미터를 9초에 뛸 정도로 몸이 빨라서 상대가 시라소니에게 맞고 쓰러지는 것은 봤는데 정작 시라소니가 어떻게 때렸는지는 안보였다던가, 중국 마적패 20 여명을 혼자 제압했다는 얘기, 북경에서 18기의 명인 마오와 대결에서 이겼다던가 하는 등등의 전설은 낭만파 주먹들의 야사에서도 항상 등장하는 내용이다. 시라소니는 무기같은 것은 쓰지 않았고, 정면에서 싸워서 적을 제압했을 뿐 기습같은  짓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보다 약한 상대에는 절대 싸움을 걸지 않았다.

 

비록 어릴때는 같이 자랐지만 가는 길은 서로 달라서 나의 아버지는 그후 신의주 고등보통학교(신의주 東中의 전신)으로 진학하고 다음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지만 시라소니는 학업을 중단하고 중국으로 조선으로 떠돌며 협객의 길을 걷는다. 그후 한동안 서로 소식을 몰랐는데 해방 후 평안도에서 월남한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서북청년단에서 다시 만났다. 가족없이 혼자 월남한 시라소니는 6.25 전쟁 전까지 스스럼없이 우리 집에와서 자주 식사를 하고 가셨다. 현관문을 열어주는 어머니에게 시라소니는 항상 돼지 오마니, 돼지래 어디 갔씨요?하고 나를 찾았다는데 평안도 지방에서는 아무거나 잘 먹고 탈없이 잘 커라고 네 댓살 되는 내 또래 남자 아이를 그렇게 불러준다고 했다.

 

시라소니가 이정재의 동대문파에게 집단 린치를 당한 사건은 드라마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내용이다. 부산 피난 시절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사하던 이정재가 동네 깡패 10여명과 싸움이 벌어져서 몰매를 맞을 위기에 있는 것을 우연히 지나던 시라소니가 싸움판에 뛰어들어 구해주었다. 그후로 둘은 형님 아우하는 친한 사이가 되어서 시라소니는 이정재가 부산에서 걱정없이 장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이정재 역시 형님 생활비는 죽을 때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서울 수복후 이정재는 6.25 전쟁으로 파괴된 동대문 시장 일대를 광장주식회사로부터 헐값에 구입하여 상인들을 입주시키면서 동대문상인연합회라는 것을 만들어 막대한 이권을 챙기고 있었고, 원래 생업이 없는 주먹건달 시라소니는 주먹세계의 생리가 그렇드시 돈 잘버는 아우 이정재에게 자연스럽게 용돈을 얻어 쓰고는 했다. 그런데 그것도 한 두번이지, 이정재는 매번와서 당연한듯 용돈을 띁어가는 시라소니 때문에 부하들 보기에도 좀 챙피했다. 그러던 차에 시라소니가 고향사람들이 동대문 시장에게 점포를 얻어 장사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한 일까지 있자 상당히 불쾌했던 모양이다. 이정재는 이것을 시라소니자기 자기의 이권을 침해하려는 것으로 보고 한번 손을 봐주기로 맘을 먹었다. 우선 부하를 시켜 시라소니에게 동대문의 자기 사무실로 오라고 전하고 동대문 정예 멤버 30 여명을 사무실과 그 주변에 포진시켜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흉계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던 시라소니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삽, 쇠파이프, 손도끼들을 든 이들 30 여명이 기습으로 공격했다. 시라소니 전투력의 특징은 엄청난 타격과 스피드이다. 그러나 이좁은 공간에서는 그의 장점인 스피드를 살릴 수 없다. 동대문 패거리들은 온갖 무기로 시라소니를 난타하여 반송장으로 만들어 놓고 백병원으로 실어 보냈다. 동양 제일의 주먹이 순간의 방심으로 이렇게 당한 것이다. (다음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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