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챨리 채플린 -김정수 칼럼-

2014.09.10 14:22

wind 조회 수:4902

 

챨리 채플린, 그는 세대와 인종을 초월하여 금세기가 낳은 최대의 코미디언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표정에는 별로 웃음이 없다. 항상 우수에 가득 찬 어설픈 광대의 모습이다.

 

 그의 전기를 읽어보면 채플린이야말로 웃고 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집시의 피를 받은 외할머니는 정신병자였고 16세에 이미 가출 소녀였던 어머니 한나 역시 정신병동에서 만년(晩年)을 보냈다. 가수였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로 평소에는 얌전하였지만 일단 술만 취했다하면 망나니로 변해 마누라를 두들겨 패고는 하였는데 그나마도 채플린이 두 살 때 가출한 후 다시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채플린의 기억에 남는 아버지는 없다. 그의 회고록에는 그저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불행했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첫 장부터 구절 구절 채워져 있다.

 

채플린의 어머니는 상당한 재질(才質)이 있는 여자여서 정규교육은 많이 받지 못하였지만 4 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와 헤어진 후 벌이 마저 시원치 않았던 무명가수 어머니는 아이들을 탁아소에 맡겨둘 돈이 없어서 채플린과 채플린의 네 살 위의 형(아버지가 다르다)을 연습장이고 공연장이고 항상 데리고 다녔다. 그래서 채플린은 어려서부터 공연장의 분위기와 연기를 자연스럽게 익힌 것이다. 어느 날 막간에 노래를 부르던 어머니 한나는 초장부터 음정이 불안정하더니 이윽고 고음에 올라가서는 완전히 갈라져 버렸다. 관객들은 입장료 돌려 달라는 야유와 함께 방석을 집어던지고 쇼는 엉망진창이 되려는 찰라 무대감독은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다섯 살의 채플린을 엄마대신 무대에 세웠다. 채플린은 “잭 존스”라는 당시의 흘러간 노래를 신나게 불러 재꼈다. “이 장바닥에 잭 존스라면 누구나 다 알아요/...잭이 노다지 찾아 떠난 후../어느날엔가 부터 잭은 보이지 않고..” 일 절이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관객들이 환호성과 함께 동전을 무대로 던지는 바람에 채플린은 동전을 줍느라고 바빠서 노래 이 절은 한참 후에나 계속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이날은 채플린으로써는 연예계에 처음 데뷔한날이었지만 엄마 한나로 보아서는 연예생활 마지막 날이기도 하였다.

 

무대에서 불러주지 않는 가수인 채플린의 어머니는 그후 병원 허드레 일로 극빈자 생활을 꾸려나가지만 아이들은 밝고 명랑하게 키우려고 노력하였다. 돈이 없어 장난감을 사줄 수가 없으니 엄마 자신이 장난감이 되어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수밖에.. “저 아저씨 걷고 있는 거 봐라. 참 웃기게 걷지? 손은 이렇게 흔들고..아침부터 심통이 대단히 나신 모양인데 부인과 싸웠나봐! 그러니 아침밥인들 얻어먹었겠어?” 감자 하나를 삶아서 세 식구가 세 조각으로 나누어 먹고 식구 모두 창 밖을 내다보면서 엄마는 지나가는 사람을 일일이 흉내내어 아이들을 즐겁게 하였다. 어머니는 흉내내기에 천재였다고 후에 채플린은 회고한다.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팬터마임(無言劇)의 技法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내 생애에서 어머니를 빼어놓고 연기자인 나를 상상할 수 없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는 엄마는 예외 없이 성경을 읽어주었는데 그냥 평범하게 낭독을 한 것이 아니고 엄마 자신이 성경 구절에 등장하는 극중인물이 되어 감정을 살려 연기한 것이다. 요즘말로 “입체낭독(立體朗讀)”을 한 것이다. 언제인가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는 장면을 읽어 줄 때였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크라이막스에 가서는 감정에 복바친 엄마가 그만 울어버렸고 어린 채플린도 따라서 울었다. “거봐라 아가야! 예수 님도 우리와 같은 연약한 육체로 고통을 받으셨고 그리고 때로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울부짖기도 하셨단다.

 

아이들이 공원에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엄마가 아이들 눈에 띌세라 외면하며 울고 있는 모습을 채프린은 어느 날 발견하였다. 배고파 허기진 아이들을 우수케 소리로 웃기고 우스꽝스러운 연기로 즐겁게 하던 엄마. 그러나 그 가슴속 깊이에는 처절한 눈물이 진하게 깔려 있음을 어린 채플린이 처음 본 것이다. 이후 어머니는 돈 벌러 떠나고 채플린 형제는 몇 년 동안이나 극빈자 아동보호소에 맡겨진다. 아동보호소에 맡겨지던 날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쳐 울던 순간들을 채플린은 늙어서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채플린의 사진을 보면 입으로는 웃는 것 같아도 그의 눈은 어김없이 울고 있다. 마치 조개의 아픔 속에서 진주가 영글어 지듯,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처절한 밑바닥 삶이 그의 연기를 영롱(玲瓏)한 眞珠빛의 예술로 승화 시켰나보다. 희극배우가 꼭 비극을 마스터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눈물을 모르는 코미디안의 연기가 보는 이의 감동을 자아 낼 수 있을까?

 

나는 희극배우 김희갑씨를 무척 좋아했다.  작고하신 그분에게 뒤늦게나마 이 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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