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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장군의 전설 (3) -김정수 칼럼-

2015.01.02 15:20

wind 조회 수:5515

김광서의 김일성 장군의 행방이 사라지고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1930년대 초반,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키자 또 다시 만주와 연해주 지방은 항일 무력항쟁으로 소용도리 치게 된다. 여기서 공산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 1936년 결성이 되는데, 1로군, 2 , 6사장(중대장급 지휘관)에 金日成 이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한다. 1937 6 4일 저녁 김일성이 이끄는 빨찌산 부대가 보천보라는 국경도시를 습격하여 공공건물 다수를 불태우고 식량을 약탈해 갔는데 간 것으로 , 인명피해는 일본인 경찰 5, 조선인 경찰 2, 일본 민간인 2세 여아 포함 2명 사망과 부상자 다수였다. 그런데  같은 해 11 13일에는  보천보 사건의 주모자 김일성(金日成)이 사살된 것으로  국내 각 신문에 보도된다. 김일성이 만주의 무송현(撫松縣) 양목정자(楊木頂子)라고 하는 밀영에서 부하 약 100명과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일본군의 포위공격을 받고 부하 8명과 함께 피살되었다는 것이다. 본명은 김성주(金成柱: 당시 나이는 36(1901년 생), 모스코바 공산대학 출신, 함경남도 태생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인근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서 그 피살된 시신이 보천보 사건의 제 6사장 김일성인 것을 확인하였다.

 

김일성 이름은  동북항일연군의 제2방면군장(대대장급 지휘관)으로 다시 등장하는데, 이 김일성은 앞서 죽은 김일성의 이름을 승계한 다른 김일성이다.  1939 5 3일 약 2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함경남도 해안의 반절구(半截溝)라는 마을을 습격하여 4시간 동안 교전을 벌여 40여 명을 살상하고 식량 등을 약탈해 도주했는데, 이 과정에서 김일성 부대의 피해도 커서 김일성 자신은 중상을 입고 도주하였고 부인인 김혜순(金惠順)도 부상당한 몸으로 체포되었다.

 

김혜순과 체포된 다른 부대원들의 진술에 의하여 제 2방면군장 김일성의 신원이 밝혀진다. 이 김일성은 본명이 金一星, 간도 용정(龍井)의 대성중학교를 나왔고 1930 5.30 간도폭동 사건 때에는 행동대장이였으며, 소련의 사관학교 출신으로,  1906년 생이다. 이 김일성은1940 12월 말 패잔병 20여명을 이끌고 소련원동으로 탈출하였는데 그 중에는 김성주(金聖柱)도 끼어 있었다. 일본군의 정보 보고서에 의하면 그후 2방면군장 김일성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인근 한 야영지에서 부상의 후유증으로 병사한 것으로 되었다. 북한의 金聖柱 김일성은 간1912년 생으로 앞의 김일성과 나이가 크게 차이가 날 뿐더러 학교는 용정이 아니라 길림에서 육문(毓文) 중학교를 다녔고 김일성 부대의 일원으로 소련으로 탈출한 후 군사첩보공작요원으로 훈련을 받았을 뿐 사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

 

1945년 소련군이 60여명의 한국인을 대동하고 평양에 진주하면서 시민들에게 내세울 한인 지도자를 물색하던 중 연해주 지구 경비 사령관 스티코프 장군의 추천을 받은 로마넹코 정치사령부가 당시 33세의 김성주(金聖柱)를 소련 연해주에서 활약하던 김광서와 만주에서 활동하던 동북인민혁명군의 김일성으로 둔갑시켜 내 새운것이다.

 

한편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김광서 김일성 장군의 행적은 소련과 국교가 정상화 되면서 밝혀지기 시작한다. 소련이 조선독립군의 무장을 해제하자 김광서 장군은 둔전제로 식량을 자급자족하면서 병력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이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동포들의 파벌 싸움에 실망하면서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와서 무관학교를 추진하고 극동사범대학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 온건한 항일운동을 폈다.

 

그러나 소련의 스탈린이 독재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1935년 당과 군에 무자비한 숙청을 감행했는데 이 때 김광서장군의 후견인이었던 소련군 원수급 장성인 블류헤르, 우보레비치 등이 숙청되고, 김광서 역시 1936년 간첩죄로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스탈린은  또한 1937년 연해주의 2십만 한국인을 중앙사시아 카자흐 공화국의 집단농장으로 강제 이주시켰울 때 김광서의 가족 역시 여기에 포함되어 옮겨졌다.  3년의 형기을 마친 김광서는 가족을 찾아 카자흐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체포되어 8년 형을 언도받았는데 그후 북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가 1942 1월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아직도 그 무덤을 찾지  못하고 있다. (1957년 소련 당국은 김광서에게 씌워졌던 일본 간첩이라는 누명을  재심하고  무죄로 판결한다).

 

미국에서도 김광서 김일성 장군에 대한 기밀문서를 2009년부터 공개하고 있다. “당시 한국사람들 사이 전설로 알려진 백마를 탄 장군 김일성은 실존 인물로 본명이 김광서이며..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이 내새운 가짜로 본명은 김성주이다”( 미 극동사령부 군사정보국(G-2) 1952 7 31일 작성한 기밀 보고서 History of The North Korean Army).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 선구자의 한 구절 조국을 찾겠노라 말달리던 선구자진짜 김일성 장군은 조국의 광복도 못본체 이역만리에서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는데, 김일성의  이름을 도용한 가짜는 조작된 백두혈통이 되어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면서3대 째 북한을 세습통치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98년 뒤늦게나마 진짜 김일성인 김광서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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