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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모모도 이소로쿠(山本五十六 1884-1943)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진주만 기습작전을 총괄 지휘했던 야마모도 이소로쿠 해군대장아버지는 56세에 낳은 아들이라고 아들 이름을 이소로쿠(五十六)라고 지었다.

                                               

 이소로쿠는 35세 되던 1919에 미국 하버드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는데 이때 해군장관이 따로 불러서 거액의 금일봉을 주면서 당부하였다고 한다.  “이 돈은 미국에 가있는 동안 네 맘대로 써라친구를 사귀는데 써도 좋고 여자를 사는데 써도 좋다돈을 어떻게 썼다고 나중에 보고할 필요도 없다단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만 알고 오너라.”

          하버드 유학생 시절 야마모도 이소로쿠 소좌

                          

이소로쿠가 하버드에 가 3년 동안 공부하면서 많은 미국인 친구들과 교제를 나누고 틈틈히 여행을 하여 견문을 넓혔다디트로이트의 어마어마한 공장지역애팔레치아의 크고 아름다운 광산텍사스의 광활한 유전지대끝도 없이 이어지는 농장거기에 미국의 선진 교육제도와 풍부한 인적자원그리고 기술력이소로쿠가 본 미국은 섬나라 일본과는 전혀 비교 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였다.  “이런 나라를 적으로 만들어서는 절대 안되겠구나!”


하버드 수학 이후에도 이소로쿠는 <워싱턴 해군 군축 회의>에 일본대표로 미국을 자주 방문하여 미군사전문가들과 교류하면서 인맥과 사고(思考)의 지평을 넗혀간다주미대사관 무관으로  근무중이던 1927년에는 미국의 린드버그가 비행기로 대서양을 건너는 장면을 실제로 목격하면서 앞으로는 항공기가 전장(戰場)의 우열을 결정한다” 는 것을 예측하였다.

주미대사관 무관 야마모도 대좌


따라서 주미대사관 근무를 마치고 해군성에 복귀한 이소로쿠는 전투기 개발과 항공부대의 육성에 주력하는 한편 해군내에서도 있었던 격심한 반발을 무릅쓰고 항공모함을 개발하고 건조하였다. “거함거포(巨艦巨砲시대는 이미 지났다이제부터는 항공모함의 시대이다.”


그때까지 일본은 조선을 침탈하고만주를 먹고중국 해안지방을 거의 점령하고인도차이나 반도를 거쳐 말레이필리핀까지 진군하면서 승승장구그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하였다.  미국이 자원봉쇄로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자 일본 군부의 분위기는 미국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고  이중 가장 강력한 주전파는 도조히데키(東條英機)를 필두로 하는 육군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당시 고노에 수상이 이소로쿠에게 물었다. “만일 미국과 전쟁을 한다면 우리 일본이 승리할 수 있겠는가?” 이에 이소로쿠는 진다고 간단하게 한마디. “우리가 기습 공격을 한다면 초반 승세는 유지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 기간은 잘해야 6개월에서 1년입니다.”  미국과 전쟁 여부를 최종 결정하던 어전(御前회의에서도 이소로쿠는 반역자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전쟁에 반대하였다그런데 어쩌랴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것을자신은 반대했지만 일단 전쟁으로 결정되자 이소로쿠는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을 다짐한다.

작전구상중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야마모도 이소로쿠가 계획하고 지휘한1941 12 7일의 진주만 공습에서 미태평양 함대의 피해는 함정 12척과 비행기 188군인 사상자 2403명으로 거의 괴멸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그러나 일본은 전투기 몇대와 사상자 몇 십명의 경미한 손실을 입었을 뿐이었다기습의 성공으로  일본 본국에서는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고 전국민이 이소로쿠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는데정작 본인은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이제 큰일 났다잠자는 거인을 깨웠구나!”


이소로쿠가 예측한대로 크게 한번 당한 미국은 군수생산에 박차를 가해서 1943년 가을까지 함재기 1천여대와 호위 전함 12순양함 14항공모함 19척이 되는 전대미문의 전력으로 태평양 함대를 보강시켜서 전선에 복귀시킨다.


한편 미국은 가장 두려운 적장(敵將)인 이소로쿠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소로쿠 사령관의 전선 시찰 계획을 암호해독으로 탐지하고 1943 4 18일 남태평양 부켄빌 섬 상공에서 이소로쿠가 탄 비행기를 요격하여 격추시킨다수색대가 시신을 찾으니 이소로쿠는 군도(軍刀)를 꽉 웅켜쥔채 죽어 있더란다.

연합함대 사령관 정장 차림

이소로쿠 원수(추서) 운구



뒤돌아보면 당시 일본의 가장 큰 적은 미국이 아니고 바로 일본 자신이었던 것이다일본은 그 때까지 거둔 승리로 인해 자만심으로 시야가 가려진채 욕심이 욕심을 낳아서 마침내 패망한 것이다그래서 이소로쿠는 생전에 몸과 마음을 크게 열어서 세상을 바라보라고  주위에 항상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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