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자유게시판

그들의 실험은 성공하였다


어느 날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하이델 베르그’ 근교 한 조그만 하숙집에 더벅머리 총각 몇 명이 찾아와 방을 빌렸다. 하숙비를 석 달치나 턱 선불로 내고 방을 정하더니 실험 도구를 가득 들여놓고 그 날부터 무언가 부산하게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궁금해서 “무얼 하시냐”고 물어도 “대단히 중요한 실험을 하고있다”고 말할 뿐, 창문의 커튼까지 다 닫아놓고 약품을 섞고 끓이고 온종일 무엇을 하는데 어쩌다가 아줌마가 방을 좀 치워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안에는 절대 못 들어오게 하였다.

그러고 몇 주가 지났다. 저 하숙집에는 이상한 청년들이 묵으면서 ‘중요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동네에 파다하게 퍼졌는데 “무슨 실험을 하는지” 모두들 수군대며 궁금하게만 생각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하숙집 주인 아줌마가 그것을 알아내어 특종 뉴스로 터트렸다. 한 총각이 아줌마에게만 살짝 귀띔해 주었는데 그것은 자기들이 지금 교황청의 특별 지시를 받아서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약을 연구하고 있는데 곧 완성될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문내지 말아달라” 신신당부했다나?

원래가 내지 말라는 소문이 더 잘 퍼지는 법이다. 소문이 순식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온 시내가 바글바글 끓기 시작하였다. “죽은 사람을 살려낼 약이 발명된다”면 그처럼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온 시민이 흥분하였고 시의회에서는 연구비 지원을 결의하는 한편 시장은 이들의 업적을 기려서 “위대한 연구의 날”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먼저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동네의 소문난 효부(孝婦) 효자(孝子) 열녀(烈女)들이 이구동성 감격하며 성의표시로 돈들을 거두어 전달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약이 완성된다는 날이 다가올수록 불안해지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시장은 자기 정적(政敵) 전임 시장이 살아난다면 차기선거가 평탄치 않을 것을 염려하였고, 과수댁인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는 길 건너 푸줏간 아저씨하고 목하 사랑이 무르익어 가는데 영감이 살아난다면 자기 신세가 얼마나 복잡해질까 근심하였다. 교구 신부님 마음도 편치 않다. 전임자가 죽었기 때문에 이 지방 담임 교역자로 파송을 받았는데 전임 신부님이 살아난다면 자기는 또 어디로 쫓겨가야 하나?

시집살이를 다시 해야 하는 며느리, 형님이 대신 유산상속을 받았던 동생...등등 그 약이 발명됨으로써 입장이 난처해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겉으로 약이 하루 속히 발명되기를 기원한 다면서도 밤중이 되면 은밀하게 그 하숙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생겼다. 시장님도 다녀가고 신부님, 대장간 영감, 식품점 며느리, 동네에서 소문난 효자 효부 열녀들도 모두 쉬쉬하면서 다녀갔다. 모두들 돈을 싸들고 와서 “연구를 중단하시고 떠나달라”는 간곡히 부탁 드리고 간 것이다.

한 몫 챙긴 돈 보따리 이외에도 하숙비까지 돌려받은 더벅머리 총각들이 희희낙락(喜喜樂樂) 마을을 떠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나는데 저자는 이렇게 마지막 구절을 장식하였다. “그들의 실험은 성공하였다” 글쎄, 과연 무슨 실험이었을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홈페이지를 2020년부터 새롭게 시작합니다! Master 2020.01.27 4599
78 앨도라도의 꿈 (2)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6.05.05 4551
77 엘도라도의 꿈 (1)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6.04.22 4468
76 골곤다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6.04.08 5531
75 봄 나들이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6.03.24 4765
74 재화(財貨)와 재화(災禍) -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 [1] wind 2016.03.10 4555
73 오륜의 서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6.01.14 4552
72 필승의 신념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5.12.31 4582
71 이소로쿠 (五十六)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5.12.17 4548
70 불모지대(不毛地帶)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5.12.03 5541
69 즉흥환상곡 wind 2015.11.12 4571
68 잭 웰치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5.10.22 4558
67 秋思(가을에 생각한다) -김정수 칼럼- wind 2015.10.14 5123
66 잭 웰치 (2)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5.10.08 4565
65 잭 웰치 (1)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5.10.01 4569
64 칠순 -김정수 칼럼- wind 2015.08.13 4550
63 이 한줌의 흙을 비웃지 말게나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5.07.31 4770
» 그들의 실험은 성공하였다 -김정수 칼럼- wind 2015.07.30 4684
61 페니실린 맨 -김정수 칼럼- wind 2015.07.28 4562
60 키루스 대왕 (5)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5.07.16 4629
59 키루스 대왕 (4)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wind 2015.07.13 4586
에덴장로교회 (Eden Church ) 2490 Grove Way, Castro Valley CA 94546 / 교회전화번호(510)538-1853
Copyright ⓒ 2014 Edenchurc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