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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컬럼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2018.11.05 12:07

Master 조회 수:1942

누가복음 15장 전체는 마치 ‘분실물 센터 Lost and Found’를 연상하게 합니다.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동전, 잃어버린 탕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탕자의 비유’는 흔히들 하나님 아버지 품을 떠난 탕자의 인생의 결말과 회개를 통한 회복, 그리고 조건 없이 품어주는 하나님 아버지의 끝없는 사랑을 메시지로 전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본문은 돌아온 탕자보다 집에 있는 맏아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5 1 2절을 보면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평소에 인간 이하로 취급해 상종하지 않았던 세리와 죄인에게 예수님께서 관심과 사랑을 베푸시니까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에게 잘해주는 예수님을 더 미워했습니다. 결국 이 본문은 첫째 아들 격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맏아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버지께 잘하는 효자였습니다. 방랑기 많은 동생과는 다르게 집에 붙어서 아버지를 도와서 열심히 아버지의 재산을 늘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던 동생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종으로서 일하겠다는 탕자를 아버지는 모든 지위를 회복시키어 아들로서 다시 맞아들입니다.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동네 잔치를 벌입니다. 그 날 역시 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맏아들은 그 장면을 보고, 그 동안 쌓였던 불평을 거침없이 쏟아냅니다. <보십시오. 아버지 저는 수년 동안, 아버지의 명을 어기지 않고 잘 섬겨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한번도 저를 위해서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창녀들과 함께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저 아들이 돌아오니까 그 녀석을 위해 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시다니요? 이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것입니까?> 맏아들도 사람인데 어쩌면 화나는 것이 당연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본문은 아버지의 행동은 정당하며, 맏아들의 분노가 오히려 “잘못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첫째로는 큰 아들은 자신의 의를 주장했습니다. 맏아들은 한 번도 아버지 곁을 떠난 적이 없이 아버지 만을 섬겼다고 자신의 의를 내세웁니다. 그런데 실제는 단 한번도 동생이 돌아오기 만을 간절히 기다리며, 가슴 아프게 발을 동동 구르는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일의 결과보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랑의 관계를 원하십니다


둘째로는 정죄의 모습입니다. 맏아들은 동생에 대한 정죄의 마음이 있었기에 탕자가 돌아왔을 때 동생이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의 아들로 부르고 있습니다. 동생의 인연을 끊을 정도로 정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로는 하나님의 은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큰 아들의 문제는 자기의 기준과 도덕적이 잣대로 하나님의 은총을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창기와 세리를 무시하고 정죄하며, 자신들은 그들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어 죄인의 존재와는 별개의 사람들로 알았습니다. 죄가 죄인 줄 모르는 것처럼 자신이 탕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집을 나간 탕자이든지, 아니면 집에 있으면서 성실하게 살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의 품을 떠난 탕자일 수 있습니다. / 조 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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