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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컬럼

믿음의 능력

2014.05.26 13:50

에덴 조회 수:7353

믿음의 능력


사람들은 참 의심이 많은 동물입니다.

끝없이 묻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사람들의 특징이고 장점입니다.

사람은 모든 일에 마땅히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의문을 갖는 것은 대단히 필요한 일입니다.

반면에 또한 도무지 믿지 않는 것은 무서운 질병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던 소돔성이 타락의 극치에 이르자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롯에게 알려주시면서

네게 속한 자들을 성 밖으로 피신시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 결혼할 사위들이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농담으로 여기고 떠나지 않았습니다(창19:14).

부자가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더 놀랍습니다.

부자가 죽고 나서 아브라함에게 부탁합니다.

제발 나사로를 보내어 자기 형제들에게 증언하게 해달라고.

죽은 자가 살아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현실을 이야기하면 회개할테니

제발 나사로를 지상에 있는 형제들에게 보내달라고.

그러자 아브라함은 말했습니다.

“모세와 선지자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16:31).

그렇습니다. 믿지 않으려 들면 죽은 자가 돌아와서 얘기해도 믿지 않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차원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 합니다.

그리고는 눈에 보이는 현실에 목숨 걸고 삽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든 것의 궁극적 현실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궁극적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궁극적 현실을 보아야 눈에 보이는 현실과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이 그랬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말씀의 궁극적 현실을 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 역사의 현실과 역사 너머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보았습니다.

오늘에 갇히지 않고 반드시 속히 될 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현실, 역사 너머의 그 현실로 도피한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이 땅의 현실,

로마의 힘에 짓밟힘을 당하고 있는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실을 재해석하며 그 현실을 살아냈습니다.

핍박 가운데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고 말씀의 현실, 계시의 현실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을 총체적으로 보는 사람은 균형감각을 잃지 않습니다.

생활의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눈앞의 현실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부에도 처할 줄 알고, 가난에도 처할 줄 압니다.

눈앞의 현실에 좌절하지도 않고 우쭐하지도 않습니다.

비굴하지도 않고 거만하지도 않습니다.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자기 인생을 삽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현실은 결코 궁극적이지 않습니다.

눈앞의 현실이 아무리 대단해 보이고, 영원할 것처럼 생각될지라도 사실은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지극히 순간적이며 이내 곧 썩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궁극적 현실입니다.

영원히 썩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현실성이 담보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이 잉태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현실이 잉태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요한은 담대히 말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1:3).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지불하는 우리의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눈앞의 승리를 위해 여러분의 인생을 경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담보하고 있는 궁극적 진실,

하나님이 계시하신 궁극적 현실을 위해 여러분의 인생을 경주하시기 바랍니다.


 // 조 병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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